명상 공간을 방불케 하는 지음갤러리의 ‘빛과 어둠’ – 20년 만에 잡은 영상 툴, AI 음악과 만나 완성된 몰입감 – “완성된 잔해, 그 안에서 찾은 실존의 안녕”

서울 지음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요나윤 작가의 개인전 《유리인간 – A Glass Entity》 현장은 단순한 전시장을 넘어 하나의 ‘명상 공간’에 가깝다. 인위적인 전체 조명을 끄고 작품에만 시선을 모은 연출과 그 공간을 채우는 음울한 트립합(Trip-hop) 풍의 선율은 관객을 깊은 사유의 늪으로 안내한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은 단연 설치 작품인 <유리인간_이었던 것>이다. 원래 벽면 설치 작품 중 하나였던 이 작업은 전시 직전 작가의 직관이 더해지며 입체적인 설치 예술로 거듭났다.
조건의 과잉으로 인해 파괴된 존재의 잔해를 형상화한 이 작품 앞에 선 한 관람객은 “잔해가 된 유리인간이 비로소 안정을 찾은 것 같다”는 인상적인 감상을 남겼다. 파괴가 끝이 아닌 고통스러운 조건으로부터 해방된 역설적 평온을 읽어낸 것이다. 작가는 “관객의 깊은 해석에 마음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며 예술적 교감의 소회를 전했다.

전시장 1층에서 상영 중인 영상 작품은 작가의 집념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대학 시절 이후 20여 년 만에 영상 편집 툴인 ‘프리미어’를 다시 켰다는 작가는 유튜브를 통해 독학하며 1분 18초의 감각적인 영상을 완성했다.
여기에 20대부터 즐겨 들었던 포티쉐드(Portishead)나 제로 세븐(Zero 7) 스타일의 음울한 정서를 AI 음악 툴인 ‘수노(Suno)’를 통해 구현해 냈다. 작가는 “음악 전문가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도록 원하는 무드를 정교하게 ‘뽑아내는’ 디렉팅에 집중했다”며, 기술의 호혜를 누리는 창작자로서의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영상의 호흡에 맞춰 멜로디의 시작과 끝을 섬세하게 잘라내는 편집 과정은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가장 공을 들인 대목 중 하나다.
전시의 화룡점정인 조명 연출 뒤에는 긴박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어 있다. 전시장 조명 환경이 예상보다 밝아 분위기 조성이 어려워지자 작가는 오픈 하루 전 급하게 새벽 배송을 통해 조명을 수급하며 세팅을 마쳤다.
“조건 중 하나라도 부족해 존재 유지가 위협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작가의 고집은 결국 완벽한 암전과 집중도를 만들어냈다. 작가는 “운 좋게 모든 조각이 맞아떨어진 것은 신의 도움이었을 것”이라며 유머 섞인 소감을 전했지만 그 기저에는 최선의 환경을 구축하려는 작가적 책임감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지하 1층 평면 전시관에 설치된 7점의 작품은 생성형 AI 프롬프트 설계와 포토샵 후보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기술은 차갑지만 그 결과물은 뜨거운 인간의 생존과 고통을 담고 있다.

유리처럼 투명하고 단단하며 때로는 처참히 부서지는 우리의 자화상. 요나윤의 《유리인간》은 오는 5월 14일까지 서울 지음갤러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생성형 AI라는 최첨단 기술의 끝에서 요나윤 작가가 건네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인간다운 ‘위로’였다. 유리처럼 위태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파편이 되어서라도 비로소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그의 메시지는 전시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투명한 잔상을 남긴다.
글: 브릿지프레스 편집부 / 사진: 요나윤 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