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하나의 서사로 구성
그림·에세이·영상 결합 ‘보는 전시’에서 ‘읽고 경험하는 전시’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지음갤러리에서 열린 임은미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 〈내 안의 풍경을 읽다〉가 글과 그림, 영상을 결합한 독특한 전시 구성으로 눈길을 끌었다.
전시는 프롤로그에서 시작해 1부, 2부, 3부를 거쳐 에필로그로 끝난다. 작품에는 일반적인 캡션이나 짧은 해설 텍스트를 덧붙이는 대신 작가의 에세이가 배치됐고 전시장에서는 영상도 지속적으로 상영됐다. 관람객은 작품을 하나씩 보는 대신 한 사람의 내면을 따라 한 권의 책을 읽듯 전시를 경험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림과 글의 관계다. 작품 옆에 짧은 해설이나 작가 노트 대신 각각의 작품에 한 편의 에세이를 함께 구성했다는 점이다. 그림과 글을 따로 떼어 놓지 않고 하나의 책 페이지처럼 디자인한 대형 패널을 제작하고 그 위에 실제 작품을 함께 설치했다.
관람객은 먼저 그림을 보고 글을 읽을 수도 있고 글을 읽은 뒤 다시 그림을 바라볼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바다와 파도, 수평선과 작은 배는 단순한 풍경을 넘어 작가가 지나온 불안과 멈춤, 다시 시작하는 시간을 담는 이미지로 확장된다.
그림이 글을 설명하고 글이 그림을 해석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글과 그림이 서로의 빈 공간을 채우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각 부의 작품을 하나씩 해석하기보다 전시는 전체적인 감정의 흐름을 중요하게 다룬다.
1부〈조각난 마음을 바라보다〉에서는 그동안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감정과 기억을 마주한다.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한 사람이 자신의 마음 안에도 수많은 생각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장이다.
2부 〈흔들리는 삶을 건너다〉에서는 불안과 멈춤의 시간이 등장한다. 계속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삶에서 멈추는 것은 처음에는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멈춘 뒤에야 이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다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 시작된다. 전시 속 바다와 작은 배가 가장 직접적으로 작가의 내면과 겹쳐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 결과 이번 전시는 회화 작품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개인전보다는 그림·글·영상·공간을 하나의 이야기 안에 편집한 복합적인 전시 방식에 가까웠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을 무엇으로 만들었는가만큼 어떤 순서로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했다. 프롤로그와 각 부의 시작을 알리는 페이지를 실제 전시장 벽면에 배치하고 그 사이에 작품과 에세이를 연결했다. 관람객은 작품을 자유롭게 골라 보는 대신 하나의 이야기를 따라 이동한다.
처음에는 마음의 조각을 바라보고 흔들리는 시간을 지나고 멈춰 서고 다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지나온 시간을 받아들이며 다시 자신의 풍경 앞에 선다. 이 때문에 전시의 동선과 작품의 배치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된다. 책을 공간으로 옮기고 페이지를 전시장 벽으로 확장한 셈이다.
전시의 마지막에도 또 하나의 차이가 있다. 마지막 작품을 본 뒤 전시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나의 풍경 앞에서〉라는 에필로그가 관람객을 기다린다. 여러 풍경을 지나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왔지만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은 이전과 조금 달라져 있다는 것이 마지막 이야기다.
작가는 자신의 마음을 읽는 일이 모든 감정을 이해하고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고 망설였던 시간까지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고 바라보는 과정이었다고 기록한다.
프롤로그로 문을 열고 세 개의 장을 지나 에필로그로 닫는 구성은 이번 개인전이 단순히 여러 작품을 모아놓은 전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작품 제작 과정에는 AI 기술이 활용됐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AI 기술 자체를 보여주는 데 중심을 두지 않았다. AI는 작가가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바다와 파도, 배와 빛 등의 이미지로 구체화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 도구 중 하나다. 그 위에 작가가 직접 쓴 글과 전시 구성, 영상이 더해지면서 각각의 이미지는 하나의 긴 서사 안에 놓였다. 따라서〈내 안의 풍경을 읽다〉는 ‘AI 작품 전시’라는 설명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미지를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글과 연결하고 다시 공간과 영상으로 확장해 한 사람의 경험을 하나의 콘텐츠로 편집한 전시라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임은미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그림을 보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의 마음을 읽는 경험으로 이어진다.전시장에 들어온 관람객은 작품을 보고 글을 읽고 영상을 마주하고 다음 장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에필로그에 도착했을 때 한 권의 책을 다 읽은 것처럼 이야기는 다시 관람객에게 돌아온다.
그림을 전시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한 권의 에세이처럼 공간에 펼쳐놓은 것, 그것이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이다.
글 BridgePress 편집부 | contact@pridgepres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