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브릿지 프레스는 AI 기술이 아이들의 도구가 되기 전, 올바른 습관으로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김한성 CPO 연재 칼럼,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시직합니다.”
초등학생 시기에는 AI 사용 규칙을 세우는 일이 중요했다면 중학생에게는 그 규칙을 스스로 납득하고 대화로 이어가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

초등학생 때는 아직 어른이 생활의 기준을 정해줄 수 있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도, 숙제하는 방식도, AI를 어디까지 써도 되는지도 부모나 교사가 비교적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이들은 더 이상 시키니까 하는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스스로 납득해야 지키고 납득하지 못한 규칙은 겉으로만 따르거나 더 교묘하게 피해 가기도 한다. 그래서 중학생과 AI 문제는 초등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이제는 감시보다 대화가 먼저다.
중학생 시기는 학업 부담이 본격적으로 커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서술형 답안, 수행평가, 발표 자료, 독서 감상문, 보고서 같은 과제가 많아지고 그 대부분은 AI가 비교적 쉽게 도와줄 수 있는 영역에 속한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조금만 도움받자는 마음으로 시작하기 쉽다. 그러나 그 작은 편의가 반복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시작하는 힘이 약해진다. 직접 생각해 문장을 만들고, 자료를 정리하고, 내 말로 설명하는 과정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문제는 단지 숙제를 대신하게 되는 데 있지 않다. 중학생은 자신의 생각과 취향, 관점을 만들어가는 시기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바로 그 미완성이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서툴더라도 자기 문장으로 써보고 어색하더라도 자기 방식으로 표현해보는 과정 속에서 아이는 조금씩 자신만의 목소리를 갖게 된다. 그런데 AI가 매끈하게 다듬어진 문장과 그럴듯한 구조를 대신 제공하기 시작하면 아이는 점점 자기 생각을 끝까지 밀고 가는 경험을 놓치게 된다. 잘 쓴 것처럼 보이는 글을 제출할 수는 있지만 정작 그 안에 내 생각은 옅어질 수 있다.
더 걱정되는 것은 중학생들이 이 문제를 몰라서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아이들이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과제와 성적, 시간 압박 앞에서 쉽게 유혹을 느낀다. 특히 주변 친구들이 모두 어느 정도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느끼면 나만 안 쓰면 손해 아니야?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성실하게 자기 힘으로 하려는 학생이 오히려 불리하다고 느끼는 왜곡된 분위기가 생긴다. 학습의 기준이 실력보다 요령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또 하나 놓치기 쉬운 문제는 AI가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태도다. 중학생들도 이제 AI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마감이 급하거나 내용이 어렵거나 귀찮을 때는 확인 과정을 생략하기 쉽다. 그 결과 틀린 정보를 그럴듯하게 받아들이는 습관이 생길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정보의 정확성 문제가 아니라 배우는 태도의 문제와 연결된다. 무엇이 맞는지 확인하고, 납득하고, 다시 질문하는 힘이 약해지면 학습은 점점 피상적으로 흐르게 된다.
그래서 중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통제보다 더 깊은 대화다. 초등학생에게는 이건 안 돼라고 선을 그어주는 방식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학생에게 같은 방식만 반복하면 잔소리로 들리기 쉽고, 아이는 대화의 문을 닫아버린다. 중학생을 움직이는 것은 명령보다 질문이다. 어른이 정답을 말해주는 것보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보게 만드는 질문이 훨씬 오래 남는다.
예를 들어 AI가 써준 글이랑 네가 직접 쓴 글은 뭐가 다르다고 느껴?라고 물어볼 수 있다. 이 질문은 아이를 바로 지적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차이를 생각하게 만든다. 또 AI 없이 이 과제를 시작하려면 어디서부터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물으면 아이는 의존을 숨기기보다 자기 힘으로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지점을 떠올리게 된다. 이 내용을 친구에게 말로 설명할 수 있어?라는 질문도 좋다. 이해한 내용이라면 설명할 수 있지만남이 대신 만들어준 내용은 막상 자기 입으로 풀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은 단순한 검사보다 훨씬 본질적인 확인이 된다.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기준을 맞추는 일도 중요하다. 학교에서는 AI 사용을 경계하는데 집에서는 별다른 기준이 없거나 반대로 가정에서는 제한하는데 학교에서는 AI 활용을 자연스럽게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기준의 차이는 아이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그 혼란은 결국 상황에 따라 안 걸리면 된다는 식의 태도로 이어지기 쉽다. 중학생에게는 복잡한 규칙보다 분명하고 일관된 기준이 필요하다.
그 기준은 아주 거창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AI로 초안을 만들 수는 있지만 최종 제출은 반드시 자신의 말로 다시 정리하기, AI가 알려준 정보는 최소 한 번은 다른 자료로 확인하기, 그리고 그 내용을 친구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이해했는지 점검하기 정도면 충분하다. 이것은 금지가 아니라 기준이다. AI를 무조건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대신 넘겨주지 않도록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중학교 3년은 생각보다 짧다. 그리고 이 시기는 아이가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전, 자기 힘으로 생각하고 쓰는 습관을 다질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준비 기간이기도 하다. AI가 더 강력해질수록 오히려 자기 생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아이가 결국 AI도 더 잘 활용하게 된다. 자기 언어가 있는 아이는 AI를 도구로 쓰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는 AI에 끌려가기 쉽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감시가 아니다. 아이 방 문 앞에서 AI 쓰지 마라고 말하는 대신 요즘 AI는 어떻게 쓰고 있어?라고 먼저 물어보는 일이다. 그걸 쓰면 편한데 네 생각은 어디에 있어?라고 차분히 묻는 일이다. 중학생에게는 규칙 하나보다 자신을 믿고 진짜로 대화하려는 어른 한 사람이 더 크게 남는다. 초등에서는 규칙이 시작이었다면 중학생에게는 대화가 시작이어야 한다.
김한성 | 투비유니콘 최고철학책임자(CPO). GoodPrompt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