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이미지의 시대, 샘물 작가는 오히려 ‘멈춰 서서 바라보는 감정’을 이야기한다.

지음갤러리에서 열리는 신미영 작가(활동명 샘물)의 개인전 《기억은 창으로 남는다》는 단순한 AI아트 전시가 아니다. 그것은 지나간 시간과 사라진 감정의 흔적을 다시 꺼내 바라보게 만드는 조용한 기록의 공간에 가깝다.
샘물 작가는 오랜 시간 유아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왔다. 사람의 성장과 감정 그리고 관계를 가까이에서 바라본 시간들은 지금의 작업 세계에도 깊게 스며들어 있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그림이 단순한 표현의 수단이었다면 지금은 기억과 감정, 상처와 회복의 과정을 담아내는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눈에 띄는 것은 AI를 단순한 기술 도구가 아니라 ‘감정의 파트너’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작가는 Midjourney, Leonardo AI, Stable Diffusion, Luma AI, Suno, Google Veo 등 다양한 생성형 AI 툴을 유기적으로 활용하며 기존 회화 방식만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웠던 내면의 흐름을 시각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가 이미지를 생산하는 시대를 넘어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새로운 방식으로 번역하는 창작 매체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시 제목 《기억은 창으로 남는다》에는 작가의 작업 세계가 압축되어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창문’이라는 오브제를 통해 인간 내면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표현해 왔다. 창문은 외부와 연결되는 통로이면서 동시에 지나간 시간과 감정이 머물러 있는 장소다. 균열이 생긴 창문, 흔들리는 빛, 오래된 창틀과 희미한 흔적들은 모두 인간 내면의 감정과 시간의 층위를 상징한다.
이번 전시는 두 개의 감정 축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섹션은 억압과 흔들림, 프레임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담고 있다. 강한 명암과 불안정한 구조 속에서 인간 내면의 긴장감을 드러낸다. 반면 두 번째 섹션은 보다 조용하고 사적인 감정으로 이동한다. 빛바랜 사진, 오래된 창틀, 비의 흔적은 사라진 시간의 온도와 기억의 잔상을 떠올리게 만든다. 작가는 작품들이 하나의 긴 문장처럼 연결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관람객이 전시장을 걸으며 누군가의 기억 속 공간을 천천히 지나가는 감각을 느끼길 원한 것이다.
특히 인상적인 작품은 「나는 아직도 그곳에 도착하지 못했다」이다. 반복되는 창의 구조와 멀리 보이는 빛은 끝나지 않는 감정의 여정과 인간 존재의 불안을 상징한다. 또 다른 작품 「아직 거기 있었다」는 오래된 창틀과 희미한 풍경을 통해 사라진 줄 알았던 기억들이 여전히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음을 이야기한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지만 결국 ‘기억과 내면의 시간’이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감정의 온도를 왜곡 없이 담아내는 일”을 꼽았다. 기억과 감정은 형태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감정이 사라지고, 반대로 지나치게 숨기면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는다는 고민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반복되는 창문과 빛의 구조를 작업하는 과정 속에서 결국 이번 전시는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현재의 자신을 마주보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감상형 전시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는 이를 ‘기록 전시’라고 표현한다. 관람객들이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직접 기록하고 남길 수 있는 참여형 구조를 통해 개인의 기억이 또 다른 누군가의 기억과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오늘날 AI아트가 단순히 시각적 자극을 생산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경험을 매개하는 새로운 예술 언어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샘물 작가는 앞으로 AI 영상과 사운드, 공간 연출이 결합된 몰입형 전시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미지 하나를 보여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하나의 기억 속 공간 안으로 들어온 듯한 감각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또한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사람들과 함께 기억을 기록하고 연결하는 참여형 프로젝트도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오늘날 예술의 역할에 대해 작가는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시대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은 창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어쩌면 이번 전시는 그 문장을 공간으로 구현한 작업인지도 모른다. AI와 인간, 기술과 감정, 기억과 기록의 경계 위에서 샘물 작가는 조용하지만 깊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가는가. 그리고 그 기억은 우리 안에 어떤 창으로 남아 있는가.
전시 안내
전시명: 《기억은 창으로 남는다》
기간: 2026년 5월 16일 ~ 5월 21일
장소: 지음 갤러리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44-14)
다음 기사 예고
브릿지프레스는 이어지는 기사에서 《기억은 창으로 남는다》 전시 현장의 공간 구성과 주요 작품, 그리고 AI아트가 감정의 언어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다 깊이 있게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