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과 소멸 사이, 작가의 선택이 예술이 되는 과정

AI 미디어 아티스트 유어예(遊於藝·본명 박선영)가 오는 10월 17일부터 21일까지 서울 마포구 지음갤러리에서 개인전 《해화(解花)》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낸 꽃의 형태를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AI 예술에서 인간의 선택과 개입이 갖는 의미를 탐구한다. 미드저니(Midjourney)와 클링(Kling)을 활용한 영상 작품 1점과 평면 작품 22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인 ‘해화(解花)’는 ‘꽃을 풀다’라는 뜻이다. 작가는 AI가 생성한 꽃을 다시 AI 안에서 해체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꽃의 윤곽을 흐리고 형태를 분산시키며 색과 여백이 뒤섞이는 과정을 반복한다. 익숙한 꽃의 이미지가 점차 사라지는 순간, 관람객은 꽃이라는 대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마주하게 된다.
유어예 작가는 앞서 디지털 아트 플랫폼 세디션(Sedition)에 공개한 연작 〈빛의 정원〉에서 꽃이 피어나는 과정을 표현했다. 이번 《해화》에서는 그 반대 방향인 분해와 소멸에 주목한다. 작가는 서면 인터뷰에서 “분해는 파괴가 아니라 독해라고 생각합니다. 형태가 사라지는 순간에야 우리는 익숙한 것을 처음으로 낯설게 보게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작업에는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가 빅토르 쉬클롭스키의 ‘낯설게 하기’ 개념이 반영돼 있다.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접하며 무뎌진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익숙한 대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시한다는 문학적 개념이다. 작가는 꽃이라는 친숙한 소재를 선택하고 AI가 생성한 이미지를 변형함으로써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부분은 AI의 생성 능력과 작가의 판단이 만나는 지점이다. 작가는 AI에 꽃의 형태를 맡기고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통제된 통제 상실’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생성된 이미지를 그대로 작품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프롬프트를 조정하고 여러 결과물 가운데 이미지를 선별하며 일부 작품에는 직접 물감을 더한다. 기술이 만들어낸 우연을 작품으로 완성하는 과정에 작가의 의도와 판단이 개입하는 것이다.
작가는 “AI가 쏟아낸 우연은 예상 밖이지만 이미 예상되어 있던 것이기도 합니다. 그 우연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에 물감을 더하고 무엇을 창틀 안에 들일지 정하는 작가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전시는 지음갤러리의 두 개 층에 걸쳐 구성된다. 1층에서는 1분 길이의 영상 〈해화〉가 반복 상영된다. 꽃이 생성되고 분해되며 소멸하는 과정을 움직이는 이미지로 보여준다. 지하 1층에서는 생성과 풀어짐, 변이와 소멸을 거쳐 다시 피어나는 흐름에 따라 평면 작품을 배치한다. 관람객은 전시 공간을 이동하며 하나의 소재가 서로 다른 형태와 매체로 변화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대표작 〈해화의 창〉은 한지에 출력한 이미지 12점에 작가가 직접 채색한 작품이다. 각각 26.5×33cm 크기의 이미지를 검은 액자에 넣고 3열 4행으로 연결해 하나의 창처럼 구성했다. 꽃잎이 흩어지고 다시 모이는 흐름을 담았으며 액자의 테두리는 창살과 같은 시각적 구조를 형성한다. AI가 생성한 이미지에 작가의 손길이 더해진 12점은 각각 유일본으로 제작됐다.
〈열여섯 송이〉는 AI가 생성한 꽃 16송이를 격자 형태로 배열한 작품이다. 〈꽃, 나무가 되다〉에서는 한 송이의 꽃이 여덟 단계에 걸쳐 나무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돌아가는 들판 I–III〉은 빛나는 숲에서 물로 되돌아가는 꽃밭을 거쳐 꽃 한 송이만 남은 빈 들판에 이르는 변화를 담았다. 한지와 나무 액자, 디아섹 등 서로 다른 재료와 출력 방식을 사용해 디지털 이미지가 물리적 작품으로 구현되는 다양한 방식도 제시한다.
전시의 마지막에는 〈오복 모란(五福牡丹)〉이 놓인다. 한국 민화에서 부귀와 복을 상징하는 모란을 AI 콜라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10×10cm 크기의 한지 출력물 다섯 점에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의 의미를 각각 담았다. 관람객은 다섯 가지 모란 가운데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선택해 같은 그림이 담긴 엽서를 가져갈 수 있다. 분해와 소멸을 거친 꽃이 다시 복을 기원하는 이미지로 돌아오면서 전시의 흐름을 마무리한다.

유어예 작가는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금융기관에서 전략기획 업무를 수행하다 창작 활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현재 건국대학교 대학원 실감Ax융합학과에서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연구하고 있다.
2025년 광화문 서울라이트 미디어파사드 국제공모전 금상을 비롯해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했으며 서울과 베를린, 뉴욕 등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26년 8월에는 런던의 디지털 아트 플랫폼 세디션의 큐레이티드 작가로 선정돼 AI 무빙 이미지 연작 〈빛의 정원〉 다섯 점을 공개했다.
작가의 창작 활동은 생성형 AI에서 발생하는 우연과 오류가 어떤 조건에서 예술 작품으로 성립하는지에 관한 연구와도 맞닿아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석사 논문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생성 결과와 작가의 선택 및 편집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 《해화》는 이러한 연구의 문제의식을 실제 창작 과정으로 확장한 전시이기도 하다.
작가는 “기계가 만든 결과가 아무리 완벽해도 그것을 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 내리는 결정입니다”라고 말했다.
영상 속에서 생성되고 사라지던 꽃은 전시의 마지막에 한지 위의 모란으로 돌아온다. 관람객이 선택한 모란 엽서는 전시장을 떠나 일상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이 과정을 “생성은 시작이 아니고, 분해도 끝이 아닙니다”라는 말로 설명했다.
전시 정보
- 전시명: 유어예 개인전 《해화(解花)》
- 기간: 2026년 10월 17일~21일
- 장소: 지음갤러리(서울 마포구 동교로 144-14)
-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 휴관: 월요일(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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