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하다 보면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교차로에서 여유 있게 양보해주는 운전자가 있는가 하면 깜빡이도 켜지 않고 불쑥 끼어드는 사람도 있다.
오늘도 그런 일이 있었다. 한 차량이 내 앞을 갑자기 끼어들며 급하게 달려갔다. 처음엔 깜짝 놀랐지만 이내 피식 웃음이 났다. 문득 충청도 사투리 한마디가 떠올랐다. “그렇게 급하면 어제 가지 그랬슈~“
이 한마디 속에는 참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여유, 유머,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어쩌면 같은 상황이라도 지역이 다르면 반응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서울 사람이라면 “왜 끼어들어!” 하며 경적을 울렸을 것이고 경상도 사람이라면 짧고 강하게 “뭐꼬 저거!”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충청도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게 말한다. “어제 가지 그랬슈~” 화는 나지만 굳이 싸움을 만들지는 않는다. 이 말 한마디에는 지역의 기후, 문화, 역사, 그리고 마음의 습관이 담겨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마음의 습관’을 다루는 것이 문화심리학(cultural psychology)의 영역이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생각과 감정, 행동은 개인 내부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같은 인간이라도 일본에서는 침묵이 배려가 되고 미국에서는 적극적인 표현이 자신감이 된다. 한국 안에서도 서울과 부산,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 사람들의 말투나 감정 표현이 조금씩 다르다. 이건 단순한 언어 습관이 아니라 세대를 거쳐 형성된 ‘집단적 정서 코드(affective code)‘에 가깝다.
예를 들어 충청도 사람들의 느긋한 말투는 단순히 게으른 성격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완만한 지형, 온화한 기후, 농경 중심의 생활문화 속에서 형성된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정서적 안정감의 결과다. 이에 비해 경상도는 산지가 많고 바다를 끼고 일찍이 개항 및 산업화가 이루어진 산업 중심지였기에 직설적이고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선호되었다. 이런 환경적 차이가 오랜 세월 사람들의 마음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심리학자 게르트 호프스테드(Geert Hofstede)는 문화가 개인의 가치와 행동을 결정짓는 방식을 연구하면서 ‘개인주의-집단주의’, ‘권력거리’ 같은 문화 차원(cultural dimensions)을 제시했다.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관계 중심적이고 정서적 유대가 강한 집단주의 문화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지역별로 세부 차이가 존재한다. 서울은 경쟁적 개인주의의 경향이 강하고, 충청도는 관계의 조화와 체면을 중시하며, 전라도는 정(情)과 말의 온도를 소중히 여기고, 경상도는 실용적이고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을 선호한다. 이런 차이는 단지 말투나 예절의 차이가 아니라 사람들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 자체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결국 지역은 단순한 행정 구역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만들어낸 심리적 공간이다. 그 안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암묵적인 철학이 스며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불편한 일을 만나도 웃음으로 넘기고 어떤 사람은 원인을 분석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단칼에 정리한다. 그 각각의 반응 속에는 그가 살아온 ‘문화적 토양‘이 깃들어 있다.
운전을 하다 보면 사람의 성격이 드러난다고들 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넓게 보면 운전은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도로 위에는 개인의 성향뿐 아니라 지역의 문화, 사회의 리듬, 심리적 습관까지 함께 달리고 있다. 그래서 같은 차선에 있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과 정서를 달리고 있는 셈이다.
오늘 급하게 끼어든 그 운전자를 보며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저 사람에게도 저렇게 달려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겠지.”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마도 충청도식 여유가 나에게도 조금은 스며든 덕분일 것이다.
결국 ‘어제 가지 그랬슈’라는 한마디처럼 우리는 타인을 향해 경적 대신 문화적 공감심리라는 미소를 건넬 여유가 필요하다.
다음번에 또 누군가가 내 앞을 급히 지나간다면, 나는 다시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그렇게 급하면 어제 가지 그랬슈~” 그리고 미소를 지을 것이다. 그 미소 속에는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문화적 공감심리 그리고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고 싶은 마음의 온도가 담겨 있을 테니까.
박지현 | 브릿지프레스 칼럼니스트, 마음나침반 대표, 교육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