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심리학

대학원 친구와 창문 너머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와, 하늘이 노랗게 물들어가네. 너무 예쁘다.”
친구의 말에 고개를 돌렸지만 제 눈에는 이상하게도 하늘이 여전히 파랗게만 보였습니다. 그 순간, 몇 년 전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그 드레스’가 떠올랐습니다.
‘흰금’ vs ‘파검’, 끝나지 않은 논쟁의 진실
기억하시나요? 어떤 사람에게는 ‘흰색-금색’으로, 또 다른 사람에게는 ‘파란색-검은색’으로 보였던 바로 그 드레스 말입니다. 사람들은 “확실히 흰금이야!” “아니야, 무조건 파검이지!” 하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죠.
화면 밝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성별 차이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논쟁의 핵심은 우리의 ‘빛 경험’에 있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하루 대부분을 실내 인공 조명 아래에서 보내는 사람은 드레스의 그림자를 뇌가 보정해 ‘흰색-금색’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햇빛과 같은 자연 광에 자주 노출되는 사람은 드레스의 밝은 영역을 보정해 ‘파란색-검은색’으로 본 것이죠.
결국 색깔은 세상에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빛의 맥락을 해석한 결과였던 겁니다.
뇌는 ‘보는 기관’이 아니라 ‘해석하는 기관’
이 드레스 논란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흔히 “눈으로 본다”고 말하지만 사실 “뇌로 본다”고 해야 더 정확합니다. 눈은 세상을 향한 창문처럼 빛을 받아들이는 감각 기관일 뿐 그 정보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뇌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뇌는 우리가 살아온 환경, 경험, 조명, 시간대 등 수많은 정보를 한순간에 종합해 지각(perception) 즉 세상에 대한 해석을 만들어냅니다. 제가 본 푸른 노을과 친구가 본 노란 노을처럼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전혀 다른 감상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각자의 뇌가 세상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색깔을 넘어 감정의 필터까지
이러한 ‘해석의 차이’는 색깔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같은 말을 듣고도 다르게 상처 받고 같은 일을 겪고도 서로 다른 감정을 느낍니다. 누군가 잊고 싶은 실패가 다른 사람에게는 성장의 발판이 되기도 하지요. 각자의 뇌가 지닌 경험과 가치관 그리고 기억의 필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름을 이해하는 아름다움
심리학이 흥미로운 이유는 우리가 얼마나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지 깨닫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드레스의 색처럼, 노을의 빛처럼, 상대방의 시선을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해석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이해할 첫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아, 저 사람의 세상은 그렇게 보이는구나.”
우리는 모두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지만 결코 같은 세상을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 그것이야말로 심리학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아름다운 통찰이 아닐까요.
박지현 브릿지프레스 칼럼니스트 | 마음나침반 대표 교육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