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의 변화 속도가 우리의 일상 속 판단 능력을 앞질러 가기 시작한 지 오래다. 검색만 하면 정보를 손쉽게 얻던 시대는 끝났다. 우리는 이제 정보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새로운 국면에 놓였다. 하루에도 수백 건의 콘텐츠, 뉴스, SNS 게시물, 그리고 AI가 생성한 정보에 노출되는 현실에서, 무엇이 사실이며 어떤 의도를 담고 있는지 구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러한 현실에서 미디어·디지털·AI 리터러시는 특정 직업이나 세대만의 과제가 아니라, 누구나 갖추어야 할 기본 문해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대화 속에서 “인터넷에 이렇게 쓰여 있던데… 이게 맞는 걸까요?”라고 묻곤 한다. 이 질문은 지금의 정보 생태계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잘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는 이용자’가 아니라, 정보의 구조와 맥락을 스스로 해석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바로 이 지점을 다룬다. ‘무엇이 사실인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 ‘왜 이 정보가 만들어졌는가?’를 던지는 순간 판단력은 자라기 시작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질문은 누가 만들었는가, 무엇을 근거로 주장하는가, 보이지 않는 관점은 무엇인가 등이다. 이 질문들은 단순한 분석이 아니라, 개인의 생각을 검증하고 타인의 의견을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이며, 현대 사회의 시민성에 필수적인 성찰의 힘이다. 여기서 말하는 ‘비판’은 상대를 다치게 하는 ‘비난’과 달리, 상대를 살리고 내용과 행동에 중심을 두는 건설적인 성찰을 바탕으로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문제는 ‘기술을 사용할 줄 아는가’가 아니라, 그 속에서 얼마나 안전하고 책임 있게 행동할 수 있는가이다. 이는 우리가 온라인에 남기는 작은 흔적들, **‘디지털 발자국(Digital Footprint)’이 지속적인 정체성과 미래의 기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고 책임지는 것을 포함한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단순한 사용 기술이 아닌, 온라인 의사소통 방식, 개인정보 보호, 그리고 디지털 발자국에 대한 이해까지 포함한 종합적 시민 역량에 가깝다. 단순히 검색을 잘하는 것보다 앞서야 하는 능력은 문제를 명확히 질문하는 능력, 출처를 구분하고 기록하는 습관, 그리고 온라인에서 타인에게 미칠 영향을 판단하는 윤리 의식이다. 이러한 역량을 갖추게 되면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 개인의 생산성과 스스로 배우는 능력으로 이어진다.

생성형 AI의 확산은 우리에게 편리함과 동시에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버튼 하나로 글, 이미지, 요약, 조언까지 제공하는 시대, 가장 중요한 것은 ‘AI가 생성한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이다. AI 리터러시는 사용법 교육이 아니다. AI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데이터 편향을 가질 수 있으며, 어떤 오류(환각)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이해하는 능력이다. 이를 바탕으로 AI를 활용해 정보를 생산할 때, 비로소 올바른 생산자로서의 역할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AI에게 던져야 할 핵심 질문은 이 답은 어떤 데이터에서 비롯되었는가, 실제 근거가 존재하는가, 다른 자료와 비교·검증해 보았는가 등이다.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은 AI가 주는 답을 무조건 신뢰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 기준을 가진 사람이다. 이것은 곧 창의성, 문제 해결력, 분석력 등 미래 사회의 핵심 역량과 연결된다.
미디어·디지털·AI 리터러시는 각기 다른 분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되어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정보 판단의 기준을 세우고, 디지털 리터러시는 기술을 안전하고 책임 있게 활용하는 틀을 제공하며, AI 리터러시는 새로운 지식 생산 환경에서의 사고 방식을 확장한다. 이 세 가지 리터러시가 결합하면 우리는 더 이상 정보에 휘둘리는 사용자가 아니라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며, 책임감 있는 디지털 시민이 될 수 있다. 오늘의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많은 기능을 빠르게 익히는 사람이 아니라, 정보를 분별하고 기술을 재해석하며 새로운 지식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깊은 사고력을 가진 사람이다. 기술은 초고속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길러야 할 핵심 역량은 시간이 갈수록 더 선명해지고 있다. 바로 판단력, 성찰력, 책임감이다. 이 세 가지 리터러시는 기술을 올바르게 활용해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게 하는 문해력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를 좇는 능력이 아니라 흔들림 없이 기준을 세우는 능력이다. 그 기준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자라고 있다.
허성희 | 디지털 리터러시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