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년간 학부모 상담을 이어오며 수천 건의 영어 학습 고민을 들었다는 한 영어교육 전문가는 “문제는 답이 아니라 질문 자체였다”고 말한다. 학부모들이 반복적으로 던지는 질문에는 이미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으며, 그 전제를 수정하지 않은 채 해결책만 찾으려 하면 학습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같은 질문이 매년 반복되는 이유는 학부모의 질문 방식이 근본적인 원인을 비켜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학부모들이 가장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는 “단어를 외워도 금방 잊는다”는 고민이다. 그러나 전문가의 분석은 다르다.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단어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같은 단어를 수십 번 쓰며 암기해도 문장 속에서 맥락과 함께 접해보지 않았다면 금세 잊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반대로 단어를 따로 외우지 않았더라도 문장에서 반복적으로 접하면 오래 기억되고 실제 독해에서 활용된다. 결국 “단어를 어떻게 외워야 하나”는 질문은 비생산적이며, “이 단어를 어떤 맥락에서 읽고 써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학습의 방향이 바로 선다는 지적이다.
문법 학습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된다. 학부모들은 “문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고민을 가장 많이 털어놓는다. 하지만 전문가에 따르면 문법은 ‘이해’보다 ‘적용’이 훨씬 중요하다. 많은 학생들이 개념 설명을 듣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만, 실제 문장을 쓰거나 고치는 단계에서는 반복적으로 실수를 한다. 이는 개념 부족이 아니라 적용 경험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다. 문법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써보고 변형해 보며 체득해야 하는 영역인데, 학부모의 질문은 대개 ‘더 쉬운 설명’을 요구하는 데 머무른다. 그래서 그는 “문법을 쉽게 이해시키는 방법은 없다. 대신 얼마나 많이 써봤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읽기 속도에 대한 고민 또한 학부모들의 오해에서 비롯된다. “읽기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질문에는 “빨리 읽어야 한다”는 전제가 자리한다. 그러나 실제 상위권 학생들은 처음에는 천천히 읽더라도 문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더 빠르게 문제를 해결한다. 반면 중위권 학생들은 빠르게 읽으려다 문장을 얕게 훑고 단어만 조합해 뜻을 짐작하는 방식에 머문다. 이는 시험장에서 여러 번 다시 읽는 상황을 만들고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전문가의 설명에 따르면 “정확성이 속도를 만든다”는 원칙이 중요하며, “어떻게 빨리 읽을까”보다 “정확하게 한 번에 읽고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원을 다녀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는 고민 역시 매년 반복된다. 여기에는 ‘학원에 다니면 성적이 오른다’는 오해가 자리한다. 그러나 실제로 성적 향상의 핵심은 학원 수업이 아니라 집에서의 공부 시간과 복습 습관이다. 학원 수업은 길어야 일주일 2~3시간이며, 남은 165시간 동안 어떻게 학습하느냐가 성장을 결정한다. 강사의 역할은 학습 방향 제시와 구조 설계, 동기 부여에 불과하며, 실제 성장은 학생 스스로의 시간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상위권 학생의 공통점은 학원의 시스템을 집에서 스스로 따라가는 자기주도 학습”이라고 말했다.
영어 학습에서 태도와 흥미 문제도 학부모들이 흔히 갖는 오해 중 하나이다. 많은 부모가 “아이가 영어를 싫어한다”고 말하며 흥미를 위해 게임이나 영상 콘텐츠를 찾는다. 하지만 전문가의 진단은 다르다. 학생들은 영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워서 회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학습 난이도를 낮추어 성공 경험을 제공하면 태도가 바뀌고 흥미가 생긴다. 그는 “흥미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며 “잘하면 좋아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흥미를 어떻게 높일까”가 아니라 “최근 영어에서 성공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23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학부모 상담에서 반복되는 문제의 본질이 “질문 자체의 잘못된 전제”라고 지적했다. 단어를 외우는 방식, 문법 개념 이해, 읽기 속도, 학원 의존 등은 모두 표면적인 문제이며, 진짜 원인은 학습자의 사용 경험 부족, 적용 부재, 잘못된 학습 순서, 자기주도 학습 부재 등 구조적 요인에 있다는 것이다. 잘못된 질문을 바꾸지 않으면 어떤 해결책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 그는 영어 교육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더 많이 외울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더 정확하게 읽고 쓰고 쓸모 있게 사용할 수 있을까”로 학습의 초점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는 “중학교 영어에서 벌어지는 격차는 영어 실력이 아니라 문해력의 문제”라고 반복해 설명한다. 한글 독해력이 낮고, 긴 문장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훈련이 부족하며, 배경지식이 부족하면 영어 독해는 당연히 무너진다. 이는 영어 문제가 아니라 사고력 문제이며, 초등 6년 동안 영어라는 ‘도구’만 배우고 사고력 기반 학습을 누적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중1은 초등의 잘못된 학습 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하며, 지금부터라도 학습 구조를 이해 중심, 적용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