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길 왜 또 가?”라는 질문에 답하다

같은 장소 다른 느낌,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달랐다. “거길 왜 또 가?” 라는 질문에 답하며 익숙한 풍경 속에서 새롭게 발견한 나의 시선을 이야기 한다.사람들이 가끔 나에게 묻는다. “아직 못 가본 곳도 많은데 거기를 왜 또 가요?”
물론 맞는 말이다. 나 역시 가고 싶은 곳도, 아직 가보지 못한 곳도 너무 많다. 그럼에도 나는 국내 여행이든 해외여행이든 갔던 곳을 다시 찾는 여행을 좋아한다. 같은 장소라도 갈 때마다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다르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2022년 여름의 제주도가 그랬다. 4박 5일 여정 내내 날씨는 축복처럼 좋았지만 숨이 턱 막히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제주 올레길 코스 중 하나인 한담해안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분명 예쁜 길이었지만 너무 더웠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그냥 드라이브하면서 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애월 쪽에 도착했다. 눈에 보이는 첫 카페로 뛰어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단숨에 들이켰다. 신기하게도 카페에서 보는 풍경이 내가 방금 걸어온 길보다 더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아, 반대편에 차를 두고 왔는데 어찌 돌아가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때의 한담해안산책로는 나에게 ‘예쁘지만 덥고, 멀고, 돌아가기 불편한 곳’으로 기억됐다.
6개월 후인 2023년 2월 말, 나는 다시 제주를 찾았다. 마침 숙소가 한담해안산책로 근처라 ‘가볍게 조금만 걷자’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날씨는 여전히 쾌청했다. 그러자 지난여름, 더위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풍경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걷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반대편에 도착해 있었다. “어? 여기가 이렇게 짧았나?”
그제야 이곳이 산책하기 딱 좋은 거리이며, 산책의 끝에 내가 좋아하는 카페들이 즐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번에 무작정 들어갔던 그 카페를 지나, 이번엔 새로운 카페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만약 오늘 여기를 다시 오지 않았더라면, 이 산책로는 나에게 덥고 멀고 힘든 길로만 남았겠지. 하지만 오늘부터 이 길은 예쁘고 산책하기 완벽한 코스로 기억되겠구나.’
같은 장소라도 그때의 상황과 나의 마음에 따라 이토록 다르게 기억될 수 있다는 것. 문득 궁금해졌다. 다음번에 이 길은 나에게 또 어떻게 느껴질까?
같은 장소를 또다시 여행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브릿지프레스 칼럼니스트 이윤미(마일스톤 대표, 여행작가)